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의 참된 아버지이며, 믿는 이들인 우리는 그의 참된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전기를 읽을 때 우리 자신의 전기를 읽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같이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거쳐야 할 첫째 단계는 부르심 받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1. 힘 : 하나님의 나타나심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살게 하는 힘
모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창 12:6). 하나님의 다시 나타나심은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시 나타나심 후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지 않고, 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르침이나 종교적인 전통 때문에 단을 쌓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났기 때문에 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쌓은 단은 바벨탑에 대한 반간증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도착한 후
가나안에 도착한 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한 후에 모레의 상수리나무에 도착했습니다(12:6-7).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히 11:8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손에는 지도가 없었습니다. 그의 지도는 산 인격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그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방향이었고 지도였습니다. 모레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아브라함이 도착했음을 의미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나타나심은 그분이 시작하신 것으로 우리와 상관이 없지만, 그 후의 나타나심 들은 우리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모레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도록 그를 강하게 하는 하나님의 다시 나타나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롯과 헤어진 후에
창 13:14-17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또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이 다시 나타나심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위해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그의 형제인 롯에게 모든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 두 번째 다시 나타나심은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강화시켰습니다.
2. 의미 : 제단
첫 번째 제단
아브라함이 모레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으며 아브라함은 그때 첫 번째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12:7). 제단은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소유한다는 뜻이고, 우리의 모든 어떠함과 소유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부르심 받은 자의 참된 경배는 우리의 모든 어떠함과 소유한 모든 것을 제단 위에 놓는 것입니다. 제단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이 땅에 있음을 깨달았다는 뜻이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시고 우리의 생활의 의미가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두 번째 제단
아브라함은 모레에서 그 땅을 통과하여 나아갔습니다. 여행하는 중에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벧엘은 서쪽에 있었고 아이는 동쪽에 있었습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두 번째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12:8, 13:3-4).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뜻하고 아이는 '폐허더미'를 뜻합니다. 벧엘과 아이는 서로 맞서 있습니다. 이 맞섬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부르심 받은 자의 눈으로 볼 때 오직 하나님의 집만 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 외에 모든 것은 폐허더미일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원칙은 동일합니다. 한 면에서 우리에게는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인 교회 생활이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폐허더미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 의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고상하고 선하고 놀라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자의 관점에 의하면 하나님의 집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폐허더미입니다.
세 번째 제단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르레에서 세 번째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13:18). 마므레는 '강함'을 뜻하고 헤브론은 교제, 친교, 우정을 뜻합니다. 창 18:1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방문하러 오신 것은 그가 마므레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방문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오랫동안 함께 머무셨고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모레는 좋은 땅이었고 벧엘과 아이 사이의 땅도 좋았지만 아브라함은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통을 위해 머문 것은 헤브론의 마므레였습니다.
3. 표현 : 장막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함의 의미
바벨에서 사람들은 먼저 성을 쌓았고 그다음에 탑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먼저 제단을 쌓았고 그다음에 장막을 세웠습니다(창 12:7-8).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했음을 뜻합니다. 그가 행한 첫 번째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그는 자신의 생활을 돌보았습니다. 장막은 아브라함의 생활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활을 먼저 돌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에 거함은 그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간증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히 11:9).
간증의 장소에서
창 12:8, 13:3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쳤습니다(창 12:8, 13:3). 여기에 하나님의 집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그분을 표현하는 간증을 시작한 곳입니다. 제단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간증의 시작이고, 장막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간증의 완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간증의 완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은 그의 자손들이 광야에서 세웠던, '증거막'이라고 부르는 성막의 축소판이었다(출 38:21).
교통의 장소에서
교통의 장소에서 그 후 아브라함은 '교통'을 의미하는 헤브론으로 그의 장막을 옮겼습니다(창 13:18). 그의 장막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간증이었으며, 하나님과 교통 하는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을 침으로써 하나님은 이 땅에서 사람과 왕래할 수 있고 교통 할 수 있는 장소를 얻으셨습니다. 그의 장막은 하나님을 하늘에서 땅으로 모셔왔습니다.
타국에서 믿음으로 체류함
아브라함의 역사가 바로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주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는 곳인 장막이 있습니다. 우리는 장막을 침으로써 우리가 다른 나라에 속했음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속하지 않았으며 더 나은 나라를 바라보고, 들어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국에서 믿음으로 체류하고 있습니다(히 11:9).
기초(터) 있는 성을 바라며 기다림
히 11:10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기초 있는 성을 바란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기초 있는 장막 안에 사는 동안 기초 있는 성을 사모하고 기다렸다. 기초 있는 성은, 견고한 기초가 놓인 하나님이 지으신 새 예루살렘입니다(계 21:14, 19-20).
새 예루살렘의 그림자 안에 삶
아브라함의 장막은 우주 안에서 하나님의 최종 성막이 될 예루살렘의 축소판입니다(계 21:2-3). 그는 장막 안에서 살 때 새 예루살렘의 그림자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성막인 새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임시적인 장막을 대치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은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의 씨입니다. 이 씨는 그의 후손들이 광야에서 세웠던 성막으로 자랐으며(출 40장) 그 추수는 하나님과 사람의 거처인 새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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